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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된 안식, 보따리 : 김수자글 2025. 5. 16. 00:39
I. 보따리 1994년에 한국을 떠나 2019년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뉴욕에서 1년, 위스콘신에서 1년 6개월, 미시간에서 6개월, 로스앤젤레스에서 6년, 앨라바마에서 4년, 아이오와에서 4년, 서울에서 2년, 그리고 다시 메릴랜드에서 6년을 살았다. 나는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머물던 곳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설렘과 두려움 때문에 잠을 설치곤 했었다. 이방인으로 사는 동안, 나의 언어는 이웃의 언어와 달랐다. 모국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결국 이웃의 언어에 동화되지 못했다. 그들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으므로 그들이 사는 공간 안으로도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만큼, 딱 그만큼 그 장소를 이해했고, 그렇게 이해한 곳은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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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로서의 미술 : 윌슨글 2025. 5. 16. 00:21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캐스트 어웨이’(2000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라는 영화가 있다. 글로벌 배송 업체의 유능한 직원이었던 척 놀랜드 (톰 행크스)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게 된다. 그는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집기들을 이용해 생존과 탈출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그의 사투에는 동반자가 있었다. 누군가의 짐에서 나온 윌슨사의 배구공. 얼룩진 핏자국에서 사람의 형상을 발견한 그는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친구. 그리고 윌슨이라고 불렀다. 윌슨은 말이 없다. 기쁠 땐 같이 기뻐도 해주고 슬픈 땐 같이 울어도 주면 좋으련만 윌슨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냥 그 곳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윌슨은, 그의 삶이 추락한 비행기처럼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는 구심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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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무게 : 키키 스미스글 2025. 3. 14. 16:41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산 나는 이웃과도 언어가 달랐지만, 내가 낳은 내 자식들과도 언어가 달랐다. 아이들은 공교육의 제도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무서운 속도로 미국이라는 국가에 동화되었고, 나와는 국적도 언어도 다른 타국인이 되었다. 나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사적 공간과, 학교와 놀이 집단이라는 공적 공간을 필요에 따라 드나들며 성장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터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며 이웃과 더불어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몇대에 걸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웃들과 달리 내 아이들의 뿌리는 연약했다. Covid-19이라는 팬데믹이 지구 곳곳을 흔들어 대자, 아이들은 뿌리를 잃고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이미 아이들을 두고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자책하며 울고 또 울었다. 그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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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메타포 : 박원주글 2025. 2. 15. 23:37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전시된 사이 트웜블리의 ‘일리암에서의 오십일’을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이것도 작품이냐고 물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 앞에서의 이 용감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니 당연히 작품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이런 끄적거림이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 작품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친구는 항변하듯 또 물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사이 트웜블리의 끄적거림이 예술작품이라는 근거를 미술 이론가들은 수천 가지 이상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술 이론가들이 작품을 규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계 안에서 만들어졌다면 끄적거림도 예술이 될 수 있지만, 미술계 밖에서 만들어진 끄적거림은 예술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