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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성의 무게 : 키키 스미스
    2025. 3. 14. 16:41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나는 이웃과도 언어가 달랐지만, 내가 낳은  자식들과도 언어가 달랐다. 아이들은 공교육의 제도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무서운 속도로 미국이라는 국가에 동화되었고, 나와는 국적도 언어도 다른 타국인이 되었다. 나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사적 공간과, 학교와 놀이 집단이라는 공적 공간을 필요에 따라 드나들며 성장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터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며 이웃과 더불어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몇대에 걸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웃들과 달리  아이들의 뿌리는 연약했다. Covid-19이라는 팬데믹이 지구 곳곳을 흔들어 대자, 아이들은 뿌리를 잃고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이미 아이들을 두고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자책하며 울고  울었다. 그들과 함께 강한 뿌리를 내렸어야 했다. 나는 강한 엄마였어야 했다. 

     

    예술 작품 중에서 가장 강인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표현해  조각상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1499)’ 아닐까 싶다. 아들의 죽음을 겪는 마리아의 나이는 어림잡아 50 언저리 일텐데 미켈란젤로의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했던  대의 앳된 모습이다. 제사장의 귀한 늦둥이를 임신한 엘리사벳을 찾아가, ‘(하나님은)…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마가복음 1:52~53, 새번역 성경)라며 사회 전복적인 내용을 노래하던 당차고 어린 미혼모 마리아의 모습 그대로이다. 서른이 넘은 건장한 청년 예수를 안은 그녀의 품도 비현실적으로 넉넉하다. 그녀는 마치 예수에게 수고했다, 아들아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의 후원을 받았던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화가였고, 시인이자 애독가였으며, 신플라톤 철학에 심취했던 그야말로 당대 최고 엘리트였다. 그는 평생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는데 모든 열정과 재능을 바쳤다. 그가 집착했던 미의 전형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예술가로서 그의 소명은  아름다움을 물질을 통해 가시화 하는 것이라 믿었다. 동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원근법을 비롯한 과학적인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작업에 몰두하였던 반면,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을 외우며 신학과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정신적인 미를 추구했다.   동안의 노력으로 완성하여 성베드로 성당에 놓여진 피에타 마리아도 미켈란젤로가 추구했던 성모 마리아의 전형이라   있다. 가장 아름다웠을 젊은 날의 육체를 가진 마리아는, 절망과 아픔 속에서도 의연하게 자식을 품에 안은 강인한 모성을 가진 완벽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갖추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엄마는 그런 모습이었던  같다. 아이들이  품에서 떠날  모르고 행복해 했을  나는 젊은 엄마였다. 아이들을 위해서 뭐든     있었고, 아이들이 자라도 나는  그렇게 젊고 희생적인 엄마일  같았다. 이제 아이들은 피에타의 예수처럼 건장한 청년의 몸을 가진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미케란젤로의 마리아와 달리 더 이상 아이들에게   것이 없는 한없이 작아진 엄마가 되었다. 무능력   모성이 가벼워지기는 커녕 날이 갈 수록  무게를 더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나는 이상화된 가부장적인 어머니의 이미지를 무의식 속에서 내면화하고 그에 미치지 못함을 자책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미켈란젤로의 마리아는 이상적인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술 작품일 뿐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뿐이랴미술의 역사에서 어머니의 이미지는 그렇게 표현되고 그렇게 소비되었다. 

     

     

    여기, 조금 다른 마리아 조각상이 있다. 키키 스미스의 동정녀 마리아 Virgin Mary (1992)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마리아를 가장 잘 이해하며 만든 작품일 지 모르겠다. ‘살갗이 벗겨진  양팔을 가볍게 앞으로 내밀고 가만히 서있는 그녀를 차마 오래 바라볼 용기조차 내기 어렵다. 어린 나이에 혼외 임신으로 온갖 멸시를 받았을 그녀는, 자신이 잉태한 아이가 장차 세상을 구할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순간부터 무거운 형벌과 같은 고난을 감내해야 했다. 믿었고 순종했지만 -마리아-여성 포기했다. 그리고 어린 예수를 키웠고, 자기 길을 가야 했던 아들을 떠나 보냈다그렇게 살갗이 벗겨진 마리아가 세상 앞에 서있다. 그녀를 안을 수도 없다. 바람의 스침도 고통이었을 그녀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예수에게, 놀랄 만큼 평온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 괜찮아.’

     

    1954 독일에서 출생한 미국 작가 키키 스미스는, 1960년대 미국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미니멀리즘 미술의 주요 작가  한명이었던 토니 스미스의 딸이기도 하다. 예술이 일상인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난 키키 스미스는 예상과는 달리 처음부터 엘리트 정규 미술 과정을 밟지 않았다. 대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응급 구조 대원으로 일하기도 했고, 때론 봉제 공장에서 재봉일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츰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노동의 결과들을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다양한 삶의 경험 만큼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작업하는 그녀에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관심사이다. ‘동정녀 마리아 (1992)’에서 처럼 스미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몸은, 미술사에서 오랫 동안 다뤄왔던 관조의 대상으로서의 몸과는 전혀 다르다. 몸은 자연의 일부이다. 생성된  성장과 노화의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는 자연계의 순환 현상을 겪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몸은 기쁨과 즐거움도 경험하지만, 소멸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도 감당해야 한다. 키키 스미스는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재생산 Regeneration이라는 종의 증식과 보존 행위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타적인 속성에 의해서만 가능한 출산과 양육은 언제나 아름답게 묘사됨으로써 가부장 제도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출산과 양육의 과정이 반드시 아름답기만  것은 아니다. 키키 스미스의  다른 조각 작품 무제 (1990)’ 최초의 사람들인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킨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것일까. 지친 그들의 육체는 마치 어딘가에 매달려 있는   늘어져 있다. 고개를 숙인  말이 없는 아담의 다리 위로 쾌락보다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배설된 듯한 정액이 흐르고, 이브의 가슴에서는 젖이 흘러 내린다아기는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고 아름답지만, 육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나를 닮아 새까만 눈동자를 가진 2.5 Kg 갓난아기는  인생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  몸에서 떨어져나온  생명체는 작고 무기력했으며 필사적으로 나를 의지했다. 아기의 체중이 늘지 않고 황달이 심해지자, 소아과 의사는 모유가 문제일  있으니 분유를 먹여보자고 제안했다.  순간 나는 젖을 물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말할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죄책감이 따라왔다. 모유가 아닌 분유를 먹이는 것에 대한 걱정 보다는젖을 물리는 것을 고통으로 느꼈던 나의 모성에 대한 죄책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나의 첫번째 죄책감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수를 헤아릴  없는 온갖 종류의 죄책감들이 매일 더해지고 있다. 나는 출산  6주가 되었을  신문 광고에서 찾은 베이비씨터에게 아기를 맡기고 다시 직장을 나갔다. 아기는 잠투정이 심했다. 남편과 나는 밤마다 돌아가며 한시간씩 아기를 가슴에 안고 자장자장을 읖조리며 끊임없이 흔들어 줘야 했다. 몹시 지쳤던 어느날울며 보채는 아기를 재우려고 품에 안았을  문득 감당할  없을 만큼의 무게가 느껴졌다.  무게감은 지금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나는 이런 엄마구나. 자식이 너무 무거운 엄마. 그 때 만난 작품이 키키 스미스의 동정녀 마리아였다. 아무리 사소한 자극도 몸서리 쳐지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엄마. 아기를 안을  조차 없는 엄마. 엄마 이외의 정체성은 모두 피부와 함께 벗겨져 나간 사람.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모성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키키 스미스는 아버지가 1961 교통사고를 당한  1980년에 사망하기 까지 거의 20년을 후유증으로 육체의 고통속에 신음하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상실의 아픔이 조금씩 아물어 가던 1988, 동생 베아트리체가 AIDS 세상을 떠났다. 육체가 온몸으로 쏟아내는 배설물들, 눈물, , 오줌, , 고름, 정액  12가지의 액체를 실버로 코팅된 유리병에 담아 죽은 자의 삶과 고통을 기념하는 작품 무제 Untitled (1987~1990)’ 제작했다. 오래된 성서에 쓰였을 듯한 고딕체로 내용물이 무엇인지를 새겨 넣은 은빛 유리병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분비물을 담아야 했길래 저렇게 크게 만들었을까 의구심이  정도의 넉넉한 크기이다. 아마도 동생 베아트리체만 아니라 1980년대 AIDS 속절없이 희생된 많은 영혼들이 세상을 떠나며 남겼던 몸의 흔적들을 남김없이 모두 담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죽어가는 자들의 육체의 연약함을 속절 없이 지켜 볼수 밖에 없었을 , 키키 스미스는  다른 종류의 연약함을 목격했다. 어머니. 그녀의 어머니 제인 로렌스는 뉴욕에서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던 예술인이었다. 남편인 조각가 토니 스미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이었던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등과 함께 뉴욕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과 포부를 나누며 자신의 길을 조금씩 확장하던 터였다. 갑작스런 딸의 죽음이 그녀에게  충격이었음은 당연했다. 서른 세살이었던 딸을 먼저 보내야 했던 어머니를 보면서, 키키 스미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신의 아들이신 예수의 자랑스러운 어머니, 성스럽고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자식을 잃은 슬픔과 아픔으로 살갗이 전부 벗겨진 고통 속의 어머니, 마리아를 말이다. 그리고 몇년 후 동정녀 마리아 Virgin Mary (1992)’를 제작했다.

     

    인류가 이름 지은 모성 종족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신체가 유기적으로 경험하는 특성이다. 나혜석은  감상기 (1923)’에서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 경험이라 말한다. 모성은 본능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오감을 가진 몸이 경험하는 하나의 현상이다. 키키 스미스는  모성의 근원을 차례로 짚어낸다. 임신으로 부풀어 오른 자궁을 검은 브론즈로 얇게 두쪽으로 만든  한쪽에 경첩을 달아 여닫을  있게 만든 자궁 Womb (1986), 만삭이  둥근 배를 부조 형식으로 주조하여 방패 Shield (1988)라는 제목을 붙인 작품 , 모성을 경험할  있게 만들어진 신체의  기관들을 몸에서 분리하여 가시적이고 개별적인 조각 작품으로 만들었다. 또한, 붉은 유리 구슬이  생리혈을 쏟아내는 여성의 육체를 형상화한 작품 Train (1993)’ 임신과 출산이 가능한 여성의 몸이 겪는 현상을 표현한다. Train 사전적 정의에는  줄로 이어진 이라는 뜻이 있다. 작품의 제목이 ‘Train’ 것에서도   있듯이, 생리혈을 상징하는 붉고 영롱한 구슬들은 흩어지고 버려진 상태가 아니라, 몇가닥의 아주  줄로 이어져 있다.    길게 이어진 피의 구슬들은 어머니--딸로 이어지는 피의 연대이기도 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매달 경험하는(또는 경험했거나 경험할) 횡적 연대이기도 하다. 여성은 누구나 출산의 의지에 관계없이 초경이 시작되는 십대 초반 부터 완경이  때까지 평생 400 가량의 생리를 한다. 매달 일주일 가까이 생리를 하면서 몸은 출산과 양육이 아픔, 번거로움, 성가심  수도 있음을 차곡차곡 익혀 나간다. 모성은 정신적이거나 감정적인 어떤 현상이 아니다. 어리고 연약한 생명체를 보호하고 지켜주고 싶은 감정은 남성이나 여성이나 다를  없다. 모성은 오히려 자식을 출산하고 양육하면서 겪게 되는 아픔과 고통을 수용하는 몸의 방식이라고   있다. 아픔을 아픔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 모성이 아니라,  아픔을 삶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모성이다. 키키 스미스의 동정녀 마리아 그러한 모성을 표현해 낸다.

     

     

    키키 스미스의 작품들은 진솔하다. 모성 또는 여성성을 과장되게 미화하거나 폄훼하지 않는다. 해가 뜨고 지듯이, 달이 차고 기울듯이, 여성의 몸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지만,  소멸되는 과정 중에 새로운 생명을 낳고 길러 종의 소멸을 유보한다. 신비롭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을 키키 스미스는 그로테스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다. 생리혈, 부푼 복부, 흘러내리는 모유, 벗겨진 살갗. 이것이 키키 스미스가 표현한 모성이며, 내가 겪은 모성이다. 모성은 몸의 경험이다. 그래서 무겁다. 어떠한 경우에도 모성은 가벼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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