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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반자로서의 미술 : 윌슨
    2025. 5. 16. 00:21

    톰 행크스가 주연했던 ‘캐스트 어웨이’(2000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라는 영화가 있다. 글로벌 배송 업체의 유능한 직원이었던 척 놀랜드 (톰 행크스)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게 된다. 그는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집기들을 이용해 생존과 탈출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그런데 그의 사투에는 동반자가 있었다. 누군가의 짐에서 나온 윌슨사의 배구공. 얼룩진 핏자국에서 사람의 형상을 발견한 그는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친구. 그리고 윌슨이라고 불렀다. 윌슨은 말이 없다. 기쁠 땐 같이 기뻐도 해주고 슬픈 땐 같이 울어도 주면 좋으련만 윌슨은 아무런 대꾸가 없다. 그냥 그 곳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윌슨은, 그의 삶이 추락한 비행기처럼 산산조각 나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는 구심점 같은 것이었다. 윌슨이 있기에 희노애락의 감정을 토로 할 수 있었고, 치밀한 계획을 윌슨에게 상세히 설명해 줌으로서 탈출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화가 났을 때 화풀이 할 수 있었고, 보살펴 줌으로서 스스로 인간성을 지킬 수 있었다. 놀랜드가 만든 사람 형상의 배구공은 이렇게 위기에 몰린 한 영혼을 살리는 동반자가 되었다. 윌슨은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신적 존재도 아니다. 한 영혼이 살아남기 위해 절실한 것들을 투사해서 만들어낸 물건일 뿐이다. 

     

    늘 그렇듯 시작은 우연에서 출발한다. 우연히 발견한 배구공, 우연히 찍힌 핏자국. 그러나 핏자국 모양에서 사람의 형상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혼자 살아남은 놀랜드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그가 가장 원했던 것, 가장 그리워 했던 것이 이미지가 되어 그의 마음속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사람의 눈은 가장 주관적인 감각 기관이다. 아는 것만 보이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는 사람이 그리웠고, 우연한 형상에서 그 이미지를 보았다. 그리고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림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술사적 가치가 큰 그림이 반드시 내게 큰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만난 그림에서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어떤 이미지를 발견했을 때, 그 그림은 아주 특별한 그림이 된다. 그렇게 관계가 시작된 그림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림의 매력은, 윌슨처럼,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거기에 있다’는 점이다. 그림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간도 멈춘다.  

     

    윌슨과 함께 무인도에서의 탈출을 계획했던 척 놀랜드는 계획을 실행하던 중 사고로 윌슨을 잃는다.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윌슨을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땟목을 연결하는 생명줄을 끊고 더 멀리 헤엄쳐 나아가야 했다. 그는 목 놓아 통곡하였지만 자신의 생명을 담보하는 끈은 놓지 않았다. 윌슨은 그의 생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친구가 되어준 그 어떤 댓가도 요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별을 고했다. 예술은 숭배의 궁극적 대상이 되려하지 않는다. 또한 삶의 목적 자체도 아니다. 예술은 우리의 삶 속에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길벗일 뿐이다. 그러나, 윌슨이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존재하는 어떤 미술 작품도 그 자체에 마술적 힘이 있는 것은 아니며 엄청난 삶의 교훈이 명확하게 적혀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가까이 두고 친구 삼아 내 모든걸 나눌 때, 내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 줄 뿐이다. 하루종일 그림을 그렸다. 창작이라기 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반복된 작업이 주체할 수 없는 피로감을 몰고 왔다. 문득, 내 그림이 어느 혹독한 삶의 현장에서 누군가에게 윌슨이 되어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설렘으로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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