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메타포 : 박원주

이_린 2025. 2. 15. 23:37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전시된 사이 트웜블리의 ‘일리암에서의 오십일’을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이것도 작품이냐고 물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 앞에서의 이 용감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니 당연히 작품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이런 끄적거림이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 작품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친구는 항변하듯 또 물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사이 트웜블리의 끄적거림이 예술작품이라는 근거를 미술 이론가들은 수천 가지 이상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술 이론가들이 작품을 규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계 안에서 만들어졌다면 끄적거림도 예술이 될 수 있지만, 미술계 밖에서 만들어진 끄적거림은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내 대답은 무성의하고 모호했다.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다면 미술계라는 건 또 무엇인가? 미술계의 권위가 미술품과 비미술품을 결정짓는 게 타당한 것인가? 더 나아가 미술계는 어떤 기준으로 이를 구분하는가? 이것이 작품인가 아닌가의 질문은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예술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술이 아닌 것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어디에, 무엇을 근거로, 누가 그어야 할까? 내 친구의 질문은 모든 예술인들이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미술사 책을 읽어 보면, 내 친구와 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1917년 4월 뉴욕에서는 미국 독립 작가 협회가 주최하는 ‘그랜드 센트럴 팰리스’라는 전시회가 열렸다. 여느 공모전처럼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평가하고 우수작을 골라 전시하는 것과는 달리, 이 전시회는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전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동시대 미술의 모든 스펙트럼을 보여주겠다는 혁신적인 의도로 기획된 전시였다. 미국 독립 작가 협회의 심의 의원 중에는 다다이즘의 영향권 아래 있는 미술인도 당연히 있었다. 이 협회의 회장이었던 마르셀 뒤샹도 작품을 출품했다. 미술사를 새로 쓰게한 ‘샘’이라는 바로 그 작품이었다. 머트라는 가명으로 출품된 이 작품 앞에서 갤러리스트들은 ‘이것도 작품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들은 스스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전시되지 못한 채 창고에 버려졌다. ‘샘 Fountain, (1917)’은 뒤샹이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였다. 작품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갤러리스트들은 작가가 직접 만들지도 않았고 또 품위와도 거리가 먼 기성품을 차마 작품으로 간주하지 못했다. 어느 시대나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작품다움’의 기준을 나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는 끊임없이 그 기준을 깨뜨리고자 노력한다. 뒤샹은, 예술가가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구별하여 선택하는 ‘행위’도 예술의 범주에 들어 갈 수 있음을 피력함으로서 ‘작품다움’의 기준을 변경했다. 이렇게 뒤샹이 만든 새로운 기준은 어느덧 100여년을 훌쩍 넘겼다.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이 그의 영향 아래 이 길을 걸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미 견고해진 이 길과는 또 다른 길을 찾고자 도전했던 많은 작가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시도들이 모여 현대 미술의 지형이 만들어 졌다. 예술의 지형도는 매일 변한다.

 

한편, 현대 미술의 지형이 끊임없이 변경됨을  메타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있다. 조각가 박원주의 ‘Fresher Widow (2009)’이다. 작품명이 말해 주듯 이 작품은 뒤샹의 ‘Fresh Widow (1920)’와 연관성이 있다. 두 작품은 형태도 쏙 닮았다. 뒤샹의 특기인 언어 유희와 패러디는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뒤샹은 프렌치 윈도우 French window를 만들어 놓고, 프레쉬 위도우 Fresh Widow라 명명했다. 그리고 경계 밖 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진 창문 본연의 기능을 부정하는 의도에서 투명한 유리가 아닌 불투명한 검정색 가죽을 끼웠다. 미술에서 창문은 회화의 은유로 여겨져 왔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화가가 창문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본 저쪽의 세계를 ‘재현’한 것이 회화라는 것이다. 창문은 경계 위에서 두 세계를 시각적으로 연결해 준다. 그런데 뒤샹의 창문은 경계 위에 있지 않다. 이 조각 작품은 벽에 설치된 것이 아니라 갤러리 한 가운데에 ‘놓여져’있다. 그리고 검정색 가죽이 끼워진 탓에 창문은 시각적으로 단절되어있다.  창문의 기능은 모두 상실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는 제 1차 세계 대전 직후이다. 전쟁에 참여하였다가 목숨을 잃은 많은 젊은 군인의 아내들은 육체의 죽음 못지 않은 슬픔과 절망에 시달렸다. 그들이 꿈꾸고 가꾸었던 세계와는 단절되었고,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 갈 수 밖에 없었다. 뒤샹이 그들을 향한 비통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시 미술계가 당면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회화가 맞닥뜨린 현실이, 전쟁 과부들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느꼈음에는 틀림이 없다. ‘프레쉬 위도우’는 한국어로 ‘신선한 과부’라고 번역 되는데, 의미상으로는 최근에 배우자를 잃은 과부라는 뜻에 가깝다. 그러나 작품명이 의미하는 바는 어짜피 ‘위도우가 된 윈도우’라는 언어 유희에 있으니 어색한 제목도 상관 없을 것 같긴 하다.  이 작품은 회화와 재현의 오랜 인연은 이미 끝이 났으니, 창문을 통해 창문너머를 보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창문 자체를 보라고 이야기 한다. 뒤샹과 동시대에 작품 활동을 했던 르네 마그리트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1920년에 만들어진 뒤샹의 ‘프레쉬 위도우’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꿈의 해석 (1927~1930)’연작에서 마그리트는 뒤샹의 창문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창문 위에 짝이 맞지 않는 이미지와 단어의 조합을 그려넣었다. 파이프를 그려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넣은 회화 작품 ‘이미지의 배반 (1929)’, 그리고 창문을 만들어 놓고 이것은 창문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뒤샹의 조각 작품 ‘프레쉬 위도우’, 이 두 작품 모두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플라톤의 미메시스에서 부터 시작된 오랜 ‘재현’의 숙제는 20세기 초 뒤샹과 그의 동시대 미술가들에 의해서 마침표를 찍게 된 것이다.

 

마르셀 뒤샹 ‘신선한 과부’, 1920년

 

90년이 지난 2009년, 박원주 작가는 이 참신한 작품을 더 참신하게 업그레이드 했다. 뒤샹의 ‘Fresh Widow’는 이제 박원주의 ‘Fresher Widow’로 대체 되었다. 박원주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위트 넘치는 한국의 조각가이다. 그의 작품이나 전시회에 관한 평전 중에서 마르셀 뒤샹이 언급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역사 속 많은 천재 작가들이 예술의 지경을 넓히고자 새로운 것을 다투어 시도를 했다면, 뒤샹은 그 예술의 경계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었고 결국 기존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경계를 만들었다. 박원주도 그렇다. 많은 작가들이 재료를 연구하고 기법을 연마하며 더 나은 작품을 만들고자 각자의 싸움에 매진할 때, 그는 늘 한걸음 물러나 전체를 조망한다. 미술계 곳곳에서 벌어졌던/벌어지는/벌어질 크고 작은 현상들을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렇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 때는 그게 정답이었겠지만 지금도 그 답이 유효할까. 그리고 그는 질문들을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Fresher Widow’가 그랬고, ‘칼날 삼부작’도 마찬가지이다. ‘칼날 삼부작 (2009)’에서는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 ‘공간 개념’ 연작 (1960년대)을 위트있게 패러디 했다. 폰타나는 캔버스를 이미지가 그려지는 화면으로만 보지 않고, 물성을 가진 오브제로도 보았다. 단색의 물감으로 색을 입힌 캔버스를 예리한 칼날로 절개하기도 하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기도 했다. 이렇게 화면을 찢는 행위는 회화의 평면성과 조각의 입체성이 하나의 작품 안에 공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칼로 베인 절개는 화면의 앞과 뒤의 공간을 연결하는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평면과 입체가 연속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며 공존한다. 이로서 평면이라는 한계에 머물렀던 회화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그런데 폰타나의 작품은 이와는 좀 다른 관점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칼날로 사정없이 베어낸 세로의 긴 칼자국들이 화면 전체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화면을 난도질하는 행위는 폭력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사회화된 우리들은 누구나 예술에 대한 경외심을 마음에 지닌다. 아무리 낡고 사소해 보여도 그것이 ‘작품’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의 태도는 달라진다. 그런 소중한 작품을 칼로 그어대다니. 누군가 의도적으로 처참하게 파손한 듯 보이는 이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폭력의 한 장면을 목격한 것과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나도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폭력성과 분노가 먼저 다가왔다. 박원주 작가의 눈에도 이 ‘위대한 절개’가 만든 깊은 상처가 먼저 보였을까. 새로운 시대를 염원하는 혁명의 몸짓이 때로는 잔인한 폭력 행위를 동반하고, 그로 인한 상처는 벌어진 채 고통을 감내 할 수 밖에 없음을 말이다. 박원주는 그의 작품 ‘칼날 삼부작’을 만들 때,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절개 주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술사를 새로 쓰게 한 이 위대한 절개의 당위성은 인정 하지만, 대신 상처는 덧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래서 일까. 박원주가 ‘칼날 삼부작’에서 만들어 낸 절개들은 50년 전 폰타나의 그것들과 같은 의미를 갖지만, 그 보다 더 아름답고, 견고하며, 평온하다.

 

박원주의 위트와 패러디는 ‘Fresher Widow’에서도 계속된다. 뒤샹의 ‘Fresh Widow’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작품의 저작권이 ‘로즈 셀라비’에게 있음을 작품에 서명으로 남겼다는 것이다. 가상의 인물 로즈 셀라비는 뒤샹의 여성 페르소나이다. 그는 스스로 이 여성 페르소나가 되어 작품을 만들곤 했다. 여성과 남성으로 엄격하게 나뉘어진 성정체성의 경계도 새로운 관점에서 재고해 보고자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인위적인 여성 페르소나를 내세웠던 것에 비해, 실재 작품은 여성의 관점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을 통해 여성성을 드러내는 것은 그의 관심 밖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능력 밖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작품을 여성 작가가 다시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될까?

 

박원주는 창틀을 빨간색 하이힐 같기도 하고 붉은색 립스틱 같기도 한, 채도 높은 레드 계열의 페인트로 곱게 단장했다. 그리고 직선적인 창문의 프레임은 지나치게 관능적이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에스 곡선을 살려 제작되었다. 정복 군인의 검정 구두 같았던 가죽 창은,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아른아른하게 굴곡진 투명한 유리로 대체되었다. 이쯤되면, 과부라기 보다는 돌싱이라는 지칭이 웬지 더 어울리 것 같은 외모이다. 과연 더 프레쉬하다. 그런데 박원주의 ‘Fresher Widow’를 여성의 관점만을 중점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편협되게 볼 수 없다. 이 작품은 그보다 더 많은 함의를 가지고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애초에 뒤샹의 ‘Fresh Widow’는 미술에 있어서 재현의 굴레를 끊고 새로운 조형의 세계로 향하는 근대 미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90년이 지난 지금, 박원주의 ‘Fresher Widow’는 현대 미술의 어떤 면모를 이야기 하고 있을까. ‘Fresher Widow’라는 언어 유희에 내포된 ‘더’ 새로워진 조형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박원주가 화려하게 꾸민 빨간 창문은 예술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꿈을 투사한다. 예술 지상주의. 예술은 고귀한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삶이 낸 상처를 치유한다. 아름다움이라는 쾌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삶을 살만한 것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리하여 예술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꾼다. 정말 그럴까. 신기루. 박원주의 작품은 그것이 신기루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창틀과 유리를 아지랭이처럼 어른거리는 비정형의 형태로 만들었다. 이상향으로 연결된 창문도 도무지 열리 것 같지 않다. 그리고 가운데 앙증맞게 달아 놓은 손잡이는 오히려 잠금 장치처럼 야무지게 맞물려있다. 예술이 환타지가 될 때 그 생명력은 위험에 처한다. 예술은 인간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계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지만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예술의 치유 능력도 감상자의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할 뿐 예술 자체에 내제된 본연의 기능은 아니다. 그래서 박원주가 만든 구불구불하게 휘어진 유리판 너머로 보이는 세계는 꿈만 같다. 어쩌면 꿈 같이 어른 거리는 저쪽 세계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스크린 너머에 있는 비물질적인 이미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초단위로 바뀌고, 시각 경험도 그러하며, 현재의 작가들이 만들어 내는 조형물도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박원주의 ‘창문’이 메타모포스적인 비정형 형태로 표현된 것도 당연하다. 나는 그의 창문을 통해 오늘날의 미술계를 바라 본다. 그리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내 친구가 했던 그 황당한 질문을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미술계에 유행처럼 회자되는 NFT 미술 작품들을 보면서 말이다. ‘세상에… 이것도 작품인가?’ 그리고 100년전 미국 독립 작가 협회의 갤러리스트들이 했던 똑같은 대답이 내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러나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의 질문은 매우 적절한 질문이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박원주의 창문처럼 메타모포스적으로 끊임없이 변형되어 가리라는 것을.

 

Fresher Widow, 박원주, 혼합재료, 2009

 

 

얼마전 나는 박원주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마틴 게이퍼드는 그의 책 ‘예술과 풍경’에서 작품을 직접 보아야 하는 이유를 이미지와 물성이 공존하는 미술 작품의 특성에서 찾는다. 이제 웬만큼 유명한 작품들은 인터넷 상에서 높은 해상도로 세밀한 디테일까지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미술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물성까지는 아무리 5K 모니터라도 전달해 줄 수 없다. 근대 미술이후 수많은 작가들이 천착해 온 것이 바로 작품의 물성 아닌가. 그래서 작품은 직접 보아야 한다. 그런데 쟈코메티의 절친이었던 장 주네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쟈코메티가 흙으로 빚어 찾아낸 형상을 주네는 손으로 그 흔적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그리고 손이 체험한 기쁨을 ‘자코메티의 아틀리에’라는 그의 책에 자세히 적었다. 내가 박원주의 작품을 그토록 소장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이다. 나는 작가가 구부리고 자르고 붙이고 사포질해서 만들어낸 매끄러운 표면의 굴곡을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다. 갤러리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이 체험은 소장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나는 장 주네의 말에 동의한다. 조각은 만져봐야 한다.

 

내가 소장한 박원주의 작품은 말 그대로 ‘액자’이다. 나는, 그림은 없는, 액자만 샀다. 액자 안은 비어있다. 박원주 특유의 기법인 슬럼핑 slumping으로 만들어진 굴곡진 유리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끄적거림도 예술품으로 만드는게 액자일진대 이 액자는 그 마법 같은 특권을 포기했다. 그리고 스스로 예술이 되었다. 박원주의 액자는 미술의 메타포이다. 액자는 미술인 것과 미술의 아닌 것의 경계이다. 박원주가 만들어 놓은 경계는 뒤틀어진 것 같기도 하고 기지개를 켜는 것 같기도 하다. 액자 안에는 크고 작은 조각들이 퍼즐을 맞추어 놓은 듯 정교하게 그러나 불규칙하게 맞붙어 있어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대지의 모습을 닮았다. 그 긴장감이 액자를 꿈틀거리게 만들고 새로운 형태로 변형시킨다. 이 액자를 나는 매일 들여다본다. 나의 존재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저 액자 속 빈 공백을 채우는 하나의 작은 조각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천천히 바라보고 또 조심스레 만져본다.

 

 

'그믐- Lunatic Phase Diagram' 박원주 Slumped Glass and W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