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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의 무게 : 키키 스미스글 2025. 3. 14. 16:41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산 나는 이웃과도 언어가 달랐지만, 내가 낳은 내 자식들과도 언어가 달랐다. 아이들은 공교육의 제도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무서운 속도로 미국이라는 국가에 동화되었고, 나와는 국적도 언어도 다른 타국인이 되었다. 나의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하는 사적 공간과, 학교와 놀이 집단이라는 공적 공간을 필요에 따라 드나들며 성장했다. 아이들은 사춘기가 되면서 부터 스스로의 공간을 만들며 이웃과 더불어 그곳에 안주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몇대에 걸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이웃들과 달리 내 아이들의 뿌리는 연약했다. Covid-19이라는 팬데믹이 지구 곳곳을 흔들어 대자, 아이들은 뿌리를 잃고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이미 아이들을 두고 한국으로 귀국한 나는 자책하며 울고 또 울었다. 그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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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의 메타포 : 박원주글 2025. 2. 15. 23:37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전시된 사이 트웜블리의 ‘일리암에서의 오십일’을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친구는 이것도 작품이냐고 물었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 앞에서의 이 용감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미술관에 걸린 그림이니 당연히 작품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이런 끄적거림이 작품이 될 수 있다면, 누구나 작품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친구는 항변하듯 또 물었다.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사이 트웜블리의 끄적거림이 예술작품이라는 근거를 미술 이론가들은 수천 가지 이상 들이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술 이론가들이 작품을 규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미술계 안에서 만들어졌다면 끄적거림도 예술이 될 수 있지만, 미술계 밖에서 만들어진 끄적거림은 예술이 될 수 없다..